요새 ROI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ROI는 Return On Investment의 약자로,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나는지를 의미한다. 원래는 미국의 화학회사 듀퐁사에 의해 사업부의 업적을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1 무엇이든 자본을 투여하여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경우에 그 효용을 지칭하는 의미로 곧잘 사용되곤 한다. 학습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결과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행위이니, 학습하는 방식에 따라 그 ROI가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글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행위는 엄청나게 ROI가 높은 학습 방식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이다.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측정할 수 있는 것들로 가능한 한 나누어보고자 한다.
학습에서의 ROI를 생각하기에 앞서 학습 과정에서 투여하는 자원의 양과, 그 결과물인 성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투자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다. 시간은 쉽게 측정 가능하지만 노력은 측정 가능한 다른 형태로 치환해야 한다. 노력은 '학습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고뇌하는 정도'로 측정해볼 수 있는데, 고뇌의 정도는 보통 별다른 진전 없이 좋은 글감에 대해 지난한 탐색만 계속 할 때 높아진다. 반면에 좋은 컨텐츠를 탐색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을수록 덜 고통스러우며, 덜 노력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즉 필요한 노력의 정도는 좋은 컨텐츠 하나를 얻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측정 가능하다. 그러면 결과물인 성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성장하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주관적인 성취감을 통해서나, 혹은 학습한 결과물을 업무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확인하는 등 비정량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어렵다. 글쓰기가 주는 효용은 여기에서부터 벌써 시작되는데, 학습한 내용을 글쓰기를 통해 구체화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보다 쉽게 측정 가능한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물들은 컨텐츠의 양보다는 내용의 질적인 부분이 정신적 성장을 보여여주기에 더 의미있으므로, 더 이상의 정량적인 측정은 어렵다. 성장에 대한 정성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바로 뒤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글쓰기의 ROI를 먼저 아래와 같이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자.
글쓰기가 얼마나 높은 ROI를 갖는 학습 방식인지는 결국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록물을 제한된 시간 안에 정리해낼 수 있는 방식인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겠다. 먼저 '기록물의 질적인 수준' 항목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질적인 수준은 컨텐츠의 내용 자체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능동적 사고를 하였는가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사실 글쓰기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양한 컨텐츠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주제로 엮어내려는 노력을 하면서 기존 지식들을 연결하고 재구성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기존에 있던 지식들을 스스로 다시 정리하고 반복하며 여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은 기존 지식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재기록하는 글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며, 글쓴이의 사고 또한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의 사고 흐름과 과정 또한 한 단계 한 단계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원본 그대로의 정보전달이 주가 되는 글도 물론 가치있지만, 좋은 글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에 있던 지식을 스스로 정리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그런 글을 쓸 수 있다. 어렵지만 '기록물의 질적인 수준' 항목을 크게 높여주는 일이고, 성장과도 직결된다.
신수정의 책 <일의 격>에서는 성장에 관하여 효율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실제로 얻은 지식을 활용하고 체화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뜻이다. 결국 글을 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귀찮고 지루하더라도 스스로 움직여야 성장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시간은 ROI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매번 능동적인 글쓰기를 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든다. 우리는 고통스럽고 힘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의지적으로 이를 이겨내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다른 바쁜 일도 많은데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닐까? 꼭 그렇게 고통을 겪어야만 성장할 수 있을까? 글쓰기는 정말 ROI가 나오는 학습 방식이 맞을까? 물론 글쓰기는 효과적인 학습 방식임이 분명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가치있는 내용을 쓰기 시작하는 일은 참 어렵다. 가치있어 보이는 수많은 글귀들을 적었다 지웠다 또 적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엉망진창이 되어있을 때도 있다. 매번 이렇게 맨 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글쓰기를 시작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좋은 글감들을 고통받지 않고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찾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제텔카스텐을 활용하면 이러한 고통을 많이 해소할 수 있다. 제텔카스텐은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막막함을 이겨내고 좋은 내용들을 엮어내는 데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메모 상자' 라는 뜻이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 교수가 수많은 저서를 집필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니클라스 루만 교수는 생에 400여 편의 논문과 70여 편의 저서를 펴냈는데, 심지어 하나같이 명저로 유명하다. 물론 이런 비인간적인 숫자가 단순히 하나의 방법론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필이 가능했던 이유가 제텔카스텐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제텔카스텐은 메모의 목적에 따라 메모의 종류를 나누고, 새로운 메모가 추가될 때마다 각각의 메모를 조립하고 연결하며 단편적인 기억 조각들을 더 깊게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이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야 글감을 찾고 좋은 컨텐츠를 찾아 헤메며 어떻게 엮을지 고뇌하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컨텐츠를 접한 순간 메모하고 평소에 기존 컨텐츠와 미리미리 연결해두는 방식이다. 이는 통해 앞서 정리한 글쓰기의 ROI 수식에서 ROI를 떨어뜨리게 하는 요인인 '시간' 항목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양질의 컨텐츠를 활용하고 기록물의 질적인 수준을 높게 유지해 효과적으로 학습하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자주 쓰는 것은 더 어렵고, 꾸준히 쓰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포기하기에는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효용이 너무나 크다. 자세히 살펴보고, 준비하고, 연습하면, 글쓰기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ROI가 높은 일이 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란다.